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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명 :  서남표(徐湳杓)
 아호 :
오석(五石),우경(牛耕)

안녕하세요. 오석 서남표의 작품세계를 담은 홈페이지입니다.

긴 여정의 길에 뭔가를 담아 정리를 하고자 개설하였습니다.

  


서울 출생
서울 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독일어과
서울 중앙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졸)

전국서화문화대상전 금상(86년)
백제미술대전 동상(86년)
전국대학미전 동상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입선(서가협94년)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입선(서가협95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 특선(국민협)
대한민국국제미술대전 대상
20주년기념 중앙서예전(서울역 문화원)
중앙대 서예연구회장역임
한국전각학연구회원
한국서예협회원
국민예술협회원
고우회회원
도장인포 운영(현)
 

   [아호 오석(五石)은 어떻게 받았나요?]
   5개의 돌인데요, 중국 동진(東晉)시대의 신선서인 <포박자>에 의하면 단사,웅황,백반석,증청,자석의 5개를 말한다고 하네요. 옛날 도사는 이 오석의 가루를 조합하여 불로불사의 영약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오석이 귀중하게 쓰이므로 나또한 모든이에게 선행과 덕을 베풀라는 의미에서 스승으로부터 서예를 한지 10년이 지나서 비로소 아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정말 10년 지나서였는데  호를 받고 무척 기뻐 며칠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서예를 배우게 된 계기가 뭐나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왠지 모르지만 집에서 붓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 하다가 4학년 때 친구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아버님이 그때 당시 서예가 였습니다. 벽에 걸려있는 작품과 묵향이 너무나 나에게 매력적이었는데 연구실 개원하신다는 말에 본격적으로 11살부터 서예를 정통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친자식처럼 보살펴 주시며 모든 것을 자상하게 알려 주신 나의 스승은 작고하신 검여 유희강선생의 맥을 이어 지금은 우리나라 서단에 계신 분입니다.

.  [전각을 도대체 왜 배웠나요?]
   서예를 하게 되면 법첩을 보면서 임서를 하게 되는데 필획의 의미 및 장법등 서예를 하는데 전각은 서예와 동전의 앞면과 뒷면의 관계처럼 꼭 필수불가결한 것이어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원로 전각가 선생님으로부터 20살에 전각을 배우게 되었는데 임서와 비슷한 모각 연습을 했었습니다. 한인에서 제백석 오창석 등 유명한 근대전각가의 작품들까지 감상 및 모각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네요.

   [간단한 발자취]
   20대초반에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 연이어 입선하는 결과와 95년에는 한중일 국제서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채찍이었던 것 같았습니다.서예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힘에도 나의 스승은 붓을 잡은지 15년째 못다 쓴 법첩의 체본을 다 써 주시고 더 많은 공부를 하라 하시며 나를 떠나 보내셨습니다. 무척 슬펐습니다.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예를 해서 생계를 꾸려가기란 힘들기 때문인 것 같네요. 캐나다에 머무르면서 동양미술에 대한 자료 수집 및 작품 만드는 일에 시간을 잠깐 보내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매년 갈 기회가 있게 되어 그때마다 서예와 전각에 대한 자료를 수집 및 없는 여비를 털어서 서예,전각 재료를 사오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주연 컴퓨터 대리점 및 홈페이지 제작업체 이엔아이에서 근무하면서 미술관련 기획도 맡아 일하면서 서예와 전각을 틈틈히 하다가 2004년 말에 퇴사하여 지금은 전업으로 본격적으로 활동 중입니다.그리하여 사이트를 오픈하게 되었네요.

 

   [계획 및 바램]
   작은 포부는 개인 전시회를 가지는 것인데 좀더 시간이 걸릴 듯 하네요. 큰 바램은 한국의 서예,전각이 중국 일본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다른 예술 장르처럼 되었으면  또 자료 및 정보를 통해 작가들의 교류 및 작품의 대중화로 인한 일반인이 쉽게 동양적 미를 느낄 수 있고 모든이들이 보다 나은 생활의 질이 향상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작품세계를 담은 방이라는 의미에서 "오석방"이라는 명칭을 붙혔습니다.

                  

 

   
 


 
 
 
     
1995년 공모전 출품을 끝으로 더 이상 공모전 출품은 안 했다.
그 동안 걸어왔던 내 인생에서의 서예,전각은 의식에서든 무의식에서든 늘 나의 내면에 큰 자리를 차지했다.
   1994년,95년에는 일찍이 대한민국서예전람회에 2번 출품해서 연이어 입상을 했었다.
   잠시 이탈된 선로에서 제자리에 올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떠나지 않는 예술에 대한 욕구이며 나를 지탱하게 하는 내면의 세계이다.
    나는 전업으로 나의 서예,전각 세계를 펼쳐 나가고 싶었던 것이 나의 작은 소망이었으며, 문화사업활동을 하는게 나의 바램이었다. 이사이트를 통해 알던 모르던 모든이에게 좋은 인연 맺기를 바란다.
   외국에 나가 캐나다 일본에 있을 때도 난 화랑, 미술관, 화방 가는 것이 제일 먼저였고 나의 목적이고 싶었다.
   나의 이성기와 성년기 그리고 지금 나를 이끌어 왔던 서예,전각은 나의 내면 세계의 큰 일부 였고 나의 존재를 가져다주었다. 뭔지 모를 마법에 이끌려 지금까지 끌려 왔으며 앞으로도 이끌려 나갈 것이다.
   이 사이트는 서예.전각을 일반인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갈수 있도록 만든 사이트이며 문화사업활동에 현실적 보탬이 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저의 뭔가들 담기 위해 작품을 만들어 나갈 것이며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부족한 것은 메우면서 작업을 할 것이다. 끝으로 내가 해 나갈 앞으로의 일들이 여러 사람들한테 보탬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오석 서남표




 

  오석의 일상적인 생활과 신변잡기적인 여러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